중학교 자유학기제
  • [자유학기제-2017.12월호] “수업 혁신? 평가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 없어”
  • 김수진 기자

  • 입력:2017.12.08 16:26
서울교육청 ‘평가 혁신 TF’의 연구책임자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이혜정 소장은 “IB를 비롯해 영국의 에이레벨,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등 서구 선진국의 대입 시험은 모두 ‘꺼내는 역량’을 평가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파고는 ‘교육’도 피해갈 수 없다. 지금의 천편일률적이고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으로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워낼 수 없다는 것이 교육계 안팎의 공통된 지적. 이에 따라 교육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교육 혁신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최근 ‘평가 혁신’을 통해 교육 혁신을 이끌어내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취임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창의융합형 미래인재를 육성하는 수업과 학습이 가능하도록 평가혁신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후 현직 교사와 교육전문가들로 평가 혁신 방안을 연구하는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정책방안연구에 돌입했다. 평가 방식을 바꿔 교육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팀의 연구책임자인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평가가 바뀌면 수업이 바뀌고, 교육과정이 바뀌며, 교사도 바뀐다”고 말한다. 평가 혁신이 교육 전반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면 미래형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우리 교육의 평가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이 소장을 만나 평가의 중요성과 혁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 ‘집어넣는 교육’, 정답 골라내게 하는 시험이 주범
현재 한국 공교육의 평가 방식을 두고 이 소장은 ‘집어넣는 것만 평가하는 교육’이라고 표현했다. 학습에 대한 평가가 오로지 ‘머릿속에 얼마나 잘 집어넣어졌는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이 소장은 “정유재란, 임진왜란, 삼포왜란, 병자호란 등을 나열해놓고 ‘다음 중 시대 순에 알맞게 나열한 것을 고르시오’ 같은 문제가 한국 내신 시험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유형”이라면서 “이런 형태의 객관식 문항은 다섯 개의 선택지가 얼마나 ‘답스러운지’에 따라 문제의 난이도가 결정된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변별해내는 능력을 갖추면 고득점으로 보상해 주다보니, 학교 수업도, 학원 강의도, 학생의 공부도 모두 ‘잘 집어넣는 것’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와 같이 집어넣는 일, 즉 데이터를 쌓는 일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래 교육은 모두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을 극대화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개정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목표도 ‘창의융합형 인재의 양성’이다. 이미 나와 있는 지식을 달달 외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머릿속에서 창의적인 무언가를 꺼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 이 소장에 따르면 이런 교육은 이른바 ‘꺼내는 교육’이다. 하지만 수능과 내신 시험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평가 방식은 여전히 꺼내는 교육이 아닌 집어넣는 교육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이 소장의 진단이다.


○ “‘꺼내는 교육’ 위한 평가 방식 변화? IB가 모범 사례!”
그렇다면 ‘꺼내는 교육’을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이 소장은 영국에서 대입 자격시험으로 활용하는 교육과정인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IB)를 ‘꺼내는 교육’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특히 ‘전 과목 논술형’ 평가 방식에 가장 주목했다. ‘전쟁 후 평화 합의가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한다는 주장에 대해 논하시오’, ‘문학 작품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추구한다는 관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논하시오’ 등은 IB에서 흔히 출제되는 시험 문제 형태다. 이런 시험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정해진 교과서의 내용을 암기하는 대신 문학 작품, 신문 기사 및 칼럼, 논문 등 다양한 재료를 소재로, 친구와 토론하며 자신만의 통찰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훈련을 한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IB의 시험은 어떤 소재를 배웠는지 평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가진 생각과 역량을 꺼낼 수 있는지 평가하는 것”이라면서 “IB 교육과정을 채택하고 있는 경기외고에선 기말고사 바로 직전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소설 ‘광장’과 ‘홍길동전’에서 공간이 갖는 의미에 대해 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는 방식으로 국어 수업을 진행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평가가 자신의 생각이나 논리를 묻는 방향으로 바뀌면 수업은 자연스레 창의력이나 논리력을 쌓고 훈련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정답만 골라내도록 하는 평가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수업을 혁신해도 학생들의 역량은 이전과 똑같을 것입니다.”(이 소장)


○ 나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허용’하는 교사인가
교육 혁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평가 방식의 변화. 하지만 개별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가 스스로 변하는 것도 평가 방식의 변화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소장은 “지금의 평가 방식 그 자체뿐만 아니라 교실 안에서, 교사에 의해 학생들이 가진 생각의 다양성이나 창의성이 억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교사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잘 외운 학생은 ‘대단하다’며 칭찬해 주고 치켜 세워주는 반면 수업 시간에 배운 것과 다른 관점, 다른 내용을 이야기하거나 질문하는 학생에게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하라’고 제지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꾸로 수업, 토론식 수업과 같은 수업 방식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가치’입니다. 얼마나 특별한 교수법으로 학생을 가르칠 것인지 보다 교사가 스스로 어떤 철학을 갖고 수업을 진행할지가 중요한 것이지요. 교사가 무엇을 잘했다고 평가할 것인지에 따라 강의식 수업에서도 ‘꺼내는 교육’이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이 소장) 꺼내는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의 발문도 중요하다. 학생들이 자신만의 논리를 세우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가진 생각의 벽을 깨뜨릴 수 있는 교사의 질문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

“수업 시간에 학생이 무슨 질문을 하는지 보다 교사가 무슨 질문을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학생들이 자신만의 생각과 논리를 갖는 것에서 끝내지 말고 그 생각의 차원을 더욱 높일 수 있도록 교사는 끊임없이 학생들을 자극해야 합니다. 앞으로 교사의 역할이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해지는 이유죠.”(이 소장)
 



▶에듀동아 김수진 기자 genie87@donga.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에듀동아에 있습니다.






  • 입력:2017.12.08 16:26
  • 저작권자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 목록

  • 위로

작성자 필수
내용
/500글자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